2016/06/01

에이미와 이저벨 - 퓰리처상 수상작 『올리브 키터리지』의 작가

에이미와 이저벨 - 10점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문학동네

퓰리처상 수상작 『올리브 키터리지』의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강렬한 데뷔작!

“우리가 일상이라고 부르는 것을 선택하는 데 필요한 용기와 어려움에 관해 빛나는 고결함과 유머로 써내려간 소설.” _앨리스 먼로(소설가)

우아하고 아름다운 문체, 삶의 내밀한 곳까지 가닿는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퓰리처상 수상작 『올리브 키터리지』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여러 국내 작가들이 이 소설에 대한 애정을 표했고, 독자들 역시 스트라우트의 차기작을 기다리며 이 작가에 대한 애정을 보내왔다. 이번에 출간되는 『에이미와 이저벨』은 스트라우트의 장편 데뷔작으로, 그의 문학적 역량을 단번에 확인시켜준 작품이다(1998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작품은 이듬해 국내에서 『타인의 여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다). 

작가로 데뷔하기까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꽤 오랜 습작 시절을 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도 거절당하기 일쑤였고, 진로를 바꿔 잠시 법률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첫 책 『에이미와 이저벨』을 출간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1980년대 중반 <뉴요커>의 에디터였던 대니얼 메네이커는 투고된 단편소설 하나를 접하게 된다. 짧은 분량의 이 단편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는 일면식도 없는 작가 지망생에게 전화를 건다. 지금은 당신의 작품을 책으로 낼 수 없지만, 나는 당신의 작품을 정말 좋아하니 절대 작가가 되는 것을 포기하지 말라는 전화였다. 그후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랜덤하우스 문학 편지자로 일하던 메네이커에게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드디어 장편소설을 완성했으니 읽어봐줄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다. 편지의 발신인은 십여 년 전 그 작가 지망생. 소설을 읽자마자 메네이커는 이 작품이 지난 몇 십년간 미국에서 발표된 소설 중 가장 완성도 있는 작품이라고 판단하고, 아직 에이전트도 없는 이 작가의 소설을 출간하기로 결심한다. 이 소설이 바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첫 장편소설 『에이미와 이저벨』이다. 

『에이미와 이저벨』이 출간된 뒤 스트라우트는 “진정한 이야기꾼”(<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진정한 문학적 재능의 소유자”(<로키 마운틴 뉴스>)라는 찬사를 받으며, 평단과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오렌지상과 펜/포크너 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아트 세덴바움 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저벨과 그녀의 딸 에이미가 보낸 뜨겁고 지독한 한 계절을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엘리자베스 슈 주연의 텔레비전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이 낯선 존재, 나의 딸……
엄마와 딸, 그 친밀하고도 낯선 풍경

이저벨 굿로는 구두공장 사무실에서 비서로 일하는 삼십대 여자. 십사 년 전 어린 딸아이를 데리고 셜리폴스에 왔다. ‘임시 거주지’로 딱 적당하다며 작은 집을 얻었는데, 그 ‘임시 거주지’에 어느덧 십사 년째 머물고 있다. 교사가 되고 싶었던 이저벨은 한여름 무더위에도 스타킹을 갖춰 신고 단정히 앉아 한결같은 속도로 타자를 치는 여자다. 좋은 남편을 갖는 것이 소망인 그녀는, 늘 자신의 진짜 삶은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자신이 공장의 다른 여자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사무실에서 일하는 다른 여자들과도 거리를 두고 지낸다. 특별히 교류하는 친구도 없다. 그녀는 상사인, 유부남 에이버리 클라크를 남몰래 마음에 품고 있다. 그녀에겐 이곳의 다른 누구에게도, 딸 에이미에게도 밝히지 않은 비밀이 있다. “삶이란 것이 그렇듯 그녀의 삶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그녀는 울타리에 앉은 새처럼 정처가 없었다.”(본문 42쪽) 

에이미 굿로는 올해 열여섯 살이 된 소녀. 이저벨의 딸이다. 큰 키에 풍성한 금발이 아름다운 이 소녀는 풍성하게 기른 머리로 늘 얼굴을 가리고 다닌다. 학교에서도 또래의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해 보이는 소녀로, 어딘지 수줍고 소심하다. 친구인 스테이시와 점심시간에 몰래 담배를 피우는 것이 에이미의 유일한 일탈이다. 엄마는 에이미가 교사가 되길 바라지만, 정작 에이미는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시(詩)다. 사실, 에이미에게는 비밀이 있다. 바로 이저벨이 아닌 ‘다른 엄마’를 원한다는 것.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것 같은 엄마, 널찍하고 반짝거리는 부엌 바닥을 대걸레로 닦는 엄마,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키스하는 엄마, 근처에 다른 집들이 있고 이웃들이 들락날락하는 집에 사는 엄마.”(본문 176~177쪽) 에이미는 그런 엄마를 원한다. 이 외진 숲속에, 이렇게 작은 공간에 박혀 사는 엄마는 원하지 않는다. 

그 여름, 셜리폴스는 유례없는 더위로 몸살을 앓는다. 타운의 중심을 관통하는 강물은 싯누런 거품을 부글거리며 한동안 죽은 듯 보였고, 하늘은 지저분한 거즈를 덮은 듯 파란 빛깔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고속도로를 지나가는 타지 사람들은 강물과 공장에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람이 사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이미와 이저벨에게는 이 여름이 유난히 혹독하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겨울, 1월의 그 특별한 날로 거슬러올라간다. 새학기 수학 수업 시간, 에이미가 찾아간 교실에는 처음 보는 사람이 칠판 앞에 서 있다. 곱슬머리에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마흔 즈음의 남자가. 그의 이름은 토머스 로버트슨. 수학교사인 데이블 선생이 사고를 당하면서 임시교사로 온 것이다. 이 새로운 사람의 출현에 아이들은 수런거리고 교실에는 활기가 감돈다. 에이미 역시 마찬가지. 그녀는 어렴풋이 자신의 삶에 커다랗고 조용한 변화가 일어나려 한다는 것을 느낀다. 
에이미는 다른 선생님들과는 다른 로버트슨이 신경쓰이기 시작하고, 그가 시를, 문학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점점 더 그에게 매료된다. 방과후 학교에 남아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무엇보다 행복하다. 이제 에이미는 엄마에게 조금씩 거짓말이 늘어간다. 로버트슨이 자신의 차로 에이미를 집에 바래다주면서, 두 사람 사이엔 은밀한 긴장감이 흐른다. 

여름방학이 되면서 에이미는 이저벨이 일하는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자궁절제수술을 받느라 긴 휴가를 낸 도티 브라운 대신 에이미가 그 자리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이저벨은 이런 제안을 해준 에이버리의 배려에 고마움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에이버리는 집 근처를 지나다 차 안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하고 있는 중년의 남자와 소녀를 보게 된다. 다름 아닌 로버트슨과 에이미. 에이버리는 자기가 목격한 것을 이저벨에게 전하고, 이저벨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충격에 휩싸인다. 

그렇게, 또 한번의 계절이 지나가고 또 한번의 여름이 사라질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아. 무. 것. 도. 

“이렇듯 격랑에 휩쓸릴 때, 강물은 집어삼킬 듯 넘실거리고 우리 자신은 죽어가는 듯 보일 때,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그 순간을 어떻게든 넘기는 것 아닐까. 훌륭하게건, 그럭저럭이건, 간신히건, 죽을 뻔하다가건,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넘기는 것’, 우리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이야기들은 대체로 그런 ‘넘기는’ 순간들을 담아내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 이 소설을 번역하면서 나는 인간이 인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방법 하나는 그런 순간들의 이면을, 그 순간들을 ‘건너가는’ 사람들의 숨은 마음을 친밀하고 세심히 바라보는 일일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바라봄은 이해를 낳고, 이해는 우리를 성장시킨다. 그리고 성장은 인간을 인간으로서 사랑하게 만든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은 그런 바라봄을 안내하는 데 탁월하다.” _‘옮긴이의 말’에서

끝날 것 같지 않은 여름, 에이미와 이저벨 사이에 흐르는 긴장과 갈등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더위를 피할 방법도, 서로를 피할 방법도 없는 집에서, 이 여름을, 그리고 서로를 견뎌야 한다. 에이미와 이저벨은 “바보 같은 자신들의 삶이 고단하고 구역질났지만 서로 찰싹 들러붙어 있었다.”(본문 313쪽) 
『에이미와 이저벨』은 사랑과 증오가 공존하는 엄마와 딸 사이의 복잡 미묘한 심리를 섬세하게 다루면서, 그들이 맞이하는 위태로운 한 계절을 그리고 있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둘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은 뜨겁고 느른한 여름 공기 속에서 가차 없이 그려진다. 소설 속 이야기는 일견 평범해 보이지만, 그 아래를 흐르고 있는 감정적 에너지는 엄청나다. 차곡차곡 쌓아올려진 감정들이 그 임계점을 넘으면서 폭발하는 순간의 미묘한 뉘앙스들을 스트라우트는 더없이 탁월하게 묘사해낸다. 

소설의 큰 줄기는 에이미와 이저벨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만, 작가는 그들 주위의 인물 하나하나에도 생명력과 온기를 불어넣으며 그 사람들을 우리 주위에 있을 법한 사람들로 만들어낸다. 에이미와 이저벨은 가혹한 여름을 견디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한 계절을 보낸다. 그 계절을 지나면서,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두 사람은 조금씩 세상과 손을 잡는다. 그리고 그들이 세상과 손을 잡기까지는 친절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작가는 보여준다. 타인의 슬픔에 기꺼이 손 내밀어주는 사람들이 언제나 곁에 있었음을 말이다. 스트라우트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 맺음, 그 아름다움을 따뜻하고 사려 깊게 포착해낸다. 그 바탕에 삶과 사람을 바라보는 스트라우트의 애정 어린 시선이 있었음은 당연하다. 『에이미와 이저벨』은 뜨거운 ‘삶의 여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청량한 한 점 가을바람을 선사하는, 그런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