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의 어머니 - 김용택 지음, 황헌만 사진/문학동네 |
“할머니! 젖가슴이 왜 이렇게 쭈글쭈글해요?”
“니 애비가 다 뜯어묵고 요것만 남았다!”
다슬기는 새끼들이 어미 몸속에서 자라다가
다 크면 어미 몸뚱아리를 파먹고 나온다 한다.
빈 껍데기가 된 어미는 흐르는 물에 조용히 떠밀려간다.
다슬기처럼,
나는 어머니의 가슴을 뜯어먹고 세상에 나와,
비로소 시인이 되었다.
오는 10월 등단 30주년을 맞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그간 한 인물에게서 시를 베껴 썼노라 고백했다. 그가 자기 시의 원 주인이자 시원(始原)으로 꼽은 인물은, 바로 어머니. 실은 김용택의 어머니 ‘양글이 양반’은 이미 문단 안팎에서 입심 좋고, 삶과 생명에 대한 혜안을 지닌 ‘문맹의 시인’으로 입소문 짜했던 터다.
김용택은 지금까지 어머니에 관해 시로, 인터뷰로, 산문 속 일화로 간간이 풀어놓긴 했지만, 책 한 권에 온전히 어머니 이야기를 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어느덧 팔순이 넘은 노모의 인생을 처음부터 고스란히 복원해보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으로 이 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 김용택은 신경림 시인도 무릎을 ‘탁!’ 쳤다는 ‘용택이 엄마’ 양글이 양반의 걸출한 입담과 삶의 흔적들을 담는 한편, 그간 생의 고비마다 어머니를 떠올리며 썼던 시들, 또한 ‘어머니에 관한 자그마한 사건기록’이라 할 만한 일기문까지를 한데 모았다. 또한 사진작가 황헌만이 눈부신 섬진강 마을의 사계 속에서 걷고 일하고 이웃들과 노니는 어머니를 계절별로 밀착 촬영한 사진들도 함께 실었다.
꽃다운 처녀가 시집와서 한 집안의 새댁이 되어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자녀를 낳아 수확하고 마른나무처럼 늙어가는 일생의 여정은, 마치 자연의 사계와도 닮았다. 이 책은 ‘제1부 봄―봄처녀, 섬진강에 시집오셨네’에서부터 ‘제4부 겨울―마른나무처럼, 어머니 늙어가시네’에 이르기까지 계절의 흐름을 따라 어머니의 일상과 인생을 좇는다.
꽃가마 타고 시집온 봄처녀가
세상풍파 다 받아내고 마른나무처럼 늙어가기까지?
‘김용택 시인을 길러낸 문맹의 시인’
양글이 양반의 어록과 인생
몸집이 작고 야무지다고 해서 본명보다 ‘양글이’로 더 많이 불렸던 처녀가 있다. 장차 시어머니 될 사람이 선을 보러 온 자리에서 야무지게 물을 떠다 드리고 얌전하게 뒷걸음질로 물러나 단번에 며느릿감으로 낙점받은 양글이 처녀. 방년 18세 때 꽃가마 타고 섬진강으로 시집온 이후, 호랑이 시어머니에게 눈물 빼며 시집살이를 하다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지만, 그 아들은 좀처럼 마음을 잡지 못하고 오리를 기르겠다고 나섰다가 살림만 폭삭 말아먹는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아들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고 시인이 되면서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섬진강으로 끌어들이니, 그이가 바로 시인 김용택이다.
하지만 김용택이 어머니의 가슴을 새카맣게 태우고, 온 가족이 빈궁한 살림살이 속에서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믿음과 지원을 단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 어느 날 학교 기성회비를 내지 않아 집으로 돌려보내진 고등학생 김용택. 내일 꼭 내겠노라, 한 번만 봐달라 말도 못 한 숙맥 아들이 평일 대낮에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온 꼴을 본 어머니는, 곧장 닭장에 남아 있던 영계를 쥐잡아 망태에 넣고 장에 나가 내다 판다. 한데 어떡하나. 닭 판 돈은 기성회비와 그 돈을 쥐고 김용택이 학교로 돌아갈 차비에나 빠듯이 들어맞고, 어머니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차비는 없다.
“어매는 어치고 헐라고?”
“나는 걸어갈란다.”
어머니는 빈 망태를 메고 땀을 뻘뻘 흘리고 서 있었다.
“차 간다. 어서 가거라.”
나는 돈을 꼭 쥔 주먹을 흔들었다.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먼지 낀 유리창이 더 흐려 보였다. 앞의자 뒤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먹이며 나는 울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리만 베던 아버지 모습이 눈물 속에 어른거렸다. 눈물을 훔치고 고개를 들어 차 뒤꽁무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뽀얀 먼지 속에서 자갈을 잘못 디뎠는지 몸이 비틀거렸다. 아! 어머니. 나는 돈을 꼭 쥐었다. 점심을 굶은 어머니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시오리 신작로를 또 걸어야 한다. (53~54쪽)
김용택의 어머니는 언제나 아들에게 마지막 남은 것 하나까지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그러다보니 가진 것 없어 챙겨주지 못한 다른 자식들에 대한 회한은 깊디깊다. 본인도 생전 학교 문 앞에도 못 가본 여성이기에, 딸이라는 이유로 학업을 중도 포기하게 한 딸 복숙이에 대한 안쓰러움과 미안함은 오죽했을까. 또한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고 집안 형편을 생각해 군말 없이 생활전선에 나선 누이의 슬픔도 김용택의 가슴엔 고스란히 눈물겨운 풍경으로 맺혀 있다.
“니 애비가 다 뜯어묵고 요것만 남았다!”
다슬기는 새끼들이 어미 몸속에서 자라다가
다 크면 어미 몸뚱아리를 파먹고 나온다 한다.
빈 껍데기가 된 어미는 흐르는 물에 조용히 떠밀려간다.
다슬기처럼,
나는 어머니의 가슴을 뜯어먹고 세상에 나와,
비로소 시인이 되었다.
오는 10월 등단 30주년을 맞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그간 한 인물에게서 시를 베껴 썼노라 고백했다. 그가 자기 시의 원 주인이자 시원(始原)으로 꼽은 인물은, 바로 어머니. 실은 김용택의 어머니 ‘양글이 양반’은 이미 문단 안팎에서 입심 좋고, 삶과 생명에 대한 혜안을 지닌 ‘문맹의 시인’으로 입소문 짜했던 터다.
김용택은 지금까지 어머니에 관해 시로, 인터뷰로, 산문 속 일화로 간간이 풀어놓긴 했지만, 책 한 권에 온전히 어머니 이야기를 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어느덧 팔순이 넘은 노모의 인생을 처음부터 고스란히 복원해보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으로 이 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 김용택은 신경림 시인도 무릎을 ‘탁!’ 쳤다는 ‘용택이 엄마’ 양글이 양반의 걸출한 입담과 삶의 흔적들을 담는 한편, 그간 생의 고비마다 어머니를 떠올리며 썼던 시들, 또한 ‘어머니에 관한 자그마한 사건기록’이라 할 만한 일기문까지를 한데 모았다. 또한 사진작가 황헌만이 눈부신 섬진강 마을의 사계 속에서 걷고 일하고 이웃들과 노니는 어머니를 계절별로 밀착 촬영한 사진들도 함께 실었다.
꽃다운 처녀가 시집와서 한 집안의 새댁이 되어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자녀를 낳아 수확하고 마른나무처럼 늙어가는 일생의 여정은, 마치 자연의 사계와도 닮았다. 이 책은 ‘제1부 봄―봄처녀, 섬진강에 시집오셨네’에서부터 ‘제4부 겨울―마른나무처럼, 어머니 늙어가시네’에 이르기까지 계절의 흐름을 따라 어머니의 일상과 인생을 좇는다.
꽃가마 타고 시집온 봄처녀가
세상풍파 다 받아내고 마른나무처럼 늙어가기까지?
‘김용택 시인을 길러낸 문맹의 시인’
양글이 양반의 어록과 인생
몸집이 작고 야무지다고 해서 본명보다 ‘양글이’로 더 많이 불렸던 처녀가 있다. 장차 시어머니 될 사람이 선을 보러 온 자리에서 야무지게 물을 떠다 드리고 얌전하게 뒷걸음질로 물러나 단번에 며느릿감으로 낙점받은 양글이 처녀. 방년 18세 때 꽃가마 타고 섬진강으로 시집온 이후, 호랑이 시어머니에게 눈물 빼며 시집살이를 하다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지만, 그 아들은 좀처럼 마음을 잡지 못하고 오리를 기르겠다고 나섰다가 살림만 폭삭 말아먹는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아들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고 시인이 되면서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섬진강으로 끌어들이니, 그이가 바로 시인 김용택이다.
하지만 김용택이 어머니의 가슴을 새카맣게 태우고, 온 가족이 빈궁한 살림살이 속에서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믿음과 지원을 단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 어느 날 학교 기성회비를 내지 않아 집으로 돌려보내진 고등학생 김용택. 내일 꼭 내겠노라, 한 번만 봐달라 말도 못 한 숙맥 아들이 평일 대낮에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온 꼴을 본 어머니는, 곧장 닭장에 남아 있던 영계를 쥐잡아 망태에 넣고 장에 나가 내다 판다. 한데 어떡하나. 닭 판 돈은 기성회비와 그 돈을 쥐고 김용택이 학교로 돌아갈 차비에나 빠듯이 들어맞고, 어머니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차비는 없다.
“어매는 어치고 헐라고?”
“나는 걸어갈란다.”
어머니는 빈 망태를 메고 땀을 뻘뻘 흘리고 서 있었다.
“차 간다. 어서 가거라.”
나는 돈을 꼭 쥔 주먹을 흔들었다.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먼지 낀 유리창이 더 흐려 보였다. 앞의자 뒤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먹이며 나는 울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리만 베던 아버지 모습이 눈물 속에 어른거렸다. 눈물을 훔치고 고개를 들어 차 뒤꽁무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뽀얀 먼지 속에서 자갈을 잘못 디뎠는지 몸이 비틀거렸다. 아! 어머니. 나는 돈을 꼭 쥐었다. 점심을 굶은 어머니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시오리 신작로를 또 걸어야 한다. (53~54쪽)
김용택의 어머니는 언제나 아들에게 마지막 남은 것 하나까지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그러다보니 가진 것 없어 챙겨주지 못한 다른 자식들에 대한 회한은 깊디깊다. 본인도 생전 학교 문 앞에도 못 가본 여성이기에, 딸이라는 이유로 학업을 중도 포기하게 한 딸 복숙이에 대한 안쓰러움과 미안함은 오죽했을까. 또한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고 집안 형편을 생각해 군말 없이 생활전선에 나선 누이의 슬픔도 김용택의 가슴엔 고스란히 눈물겨운 풍경으로 맺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