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27

블랙랜드 l 블랙펜 클럽 37 - 벨린다 바우어

블랙랜드 - 10점
벨린다 바우어 지음, 강미경 옮김/문학동네
☆2010 영국 범죄소설작가협회 골드대거 상 수상☆

『블랙랜드』는 영국 작가 벨린다 바우어의 2010년 데뷔작이자 영국 범죄소설작가협회에서 그해 최고의 범죄소설에 수여하는 골드대거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열두 살 소년과 중년 연쇄살인범의 시점을 오가는 대담한 구성, 음울한 날씨와 스산한 황무지의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조성되는 고유한 분위기, 서서히 긴장감을 높여가며 예측할 수 없는 결말을 향해 뻗어나가는 스릴러의 특성을 모두 갖춘 이 소설은 한 걸음 더 들어가 범죄로 인해 철저히 파괴된 한 가족의 상을 보여줌으로써 타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범죄의 속성을 환기시키며 결국 인간과 범죄,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장르의 경계를 확장시킨다.

처음에는 『블랙랜드』를 범죄소설로 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소년과 그의 할머니가 나오는 아주 작은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다 오래전 살해당한 아이의 어머니를 텔레비전에서 보고 에이버리 같은 살인자의 범죄가 몇십 년을, 평생을, 어쩌면 세대에서 세대에 걸쳐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궁금증이 일면서 마음을 바꾸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만약 아들이 살해당한 여자의 손자라면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내 삶은 어땠을까?’ 그 순간 용서와 숭고한 고통에 대한 내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는 한 가족의 슬픈 분열상이 떠올랐다. ‘작가의 말’에서

국내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가 벨린다 바우어는 「로커룸」으로 칼 포먼/바프타 상을 수상하며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능력을 먼저 인정받았다. 기자와 시나리오 작가 생활을 거친 후 『블랙랜드』로 데뷔했으며 대단하면서도 무섭기까지 한 재능과 신인작가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자신감으로 무장한 이 소설은 ‘첫 소설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다!’ ‘다음 소설이 기대된다!’라는 영미 언론과 독자들의 공통된 반응을 이끌어냈고 골드대거 상 수상의 영예까지 안겼다. 화려하게 첫발을 내디딘 그녀는 틈틈이 잡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는 한편, 『다크사이드』 『파인더스 키퍼스』 『구경꾼』 『삶과 죽음의 진상』 『셧 아이』 그리고 2016년 최신작 『뷰티풀 데드』까지 데뷔 후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장편소설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소년은 진실을, 살인자는 게임을 원했다!
스릴러 장르의 경계를 넓힌 파워풀하고 도발적인 데뷔작


열두 살 소년 스티븐 램은 오늘도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황무지의 땅을 파고 있다. 이토록 외롭고 처절한 ‘땅 파기’에 매달리는 이유는 단 하나, 빌리 삼촌의 시체를 찾기 위해서다. 늘 비통한 슬픔이 서려 있는 집안의 비밀, 즉 십구 년 전 실종된 빌리 삼촌이 연쇄살인범에게 살해당했고 그 시체가 지금도 엑스무어에 묻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하나뿐인 친구 루이스의 제안으로 시작된 일이었다. 이 “시체 사냥”이라는 새로운 놀이에 열을 올리다 금세 흥미를 잃어버린 루이스와는 달리 스티븐은 황무지로 가서 오래전 죽은 아이의 시체를 찾는 일을 쉽사리 그만두지 못한다. 하지만 아무 소득 없이 삼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더 늦기 전에 기다림과 실망으로 점철된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가족들의 불행을 끝내기 위해 스티븐은 시체의 위치를 알고 있을 유일한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한다. 바로 소아성애자이며 ‘밴의 교살자’로 악명을 떨쳤고 지금은 교도소에 수감중인 연쇄살인범, 빌리 역시 유괴해 살해하고 직접 황무지에 묻은 아널드 에이버리에게. 그렇게 해서 필사적으로 진실을 원하는 소년 SL과 무료한 수감생활중 예전의 힘을 다시 느끼게 해줄 게임을 원하는 연쇄살인범 AA의 암호 같은 편지 교환이 시작된다.

이렇듯 소년과 아동살해범의 대결이라는 도발적인 설정에 엑스무어라는 황폐한 공간에 대한 세세한 묘사, 존재감 없는 어린 소년의 외로운 내면, 소아성애자 연쇄살인범의 뒤틀린 심리나 교도소 생활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이 더해지며 이 책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매력이 만들어진다. 특히 시나리오를 쓰는 것으로 이력을 시작한 작가는 지루한 설명조가 아닌 사소한 행동의 묘사 하나만으로 캐릭터 전체를 이해시키는 힘이 대단해서, 주 인물인 스티븐과 에이버리는 물론 기약 없는 기다림과 삶의 무게에 지쳐버린 스티븐의 할머니와 엄마 레티 등 등장인물들이 살아 있는 듯 와 닿는다. 또한 스티븐과 에이버리의 편지 교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천진하고 순수한 소년의 편지가 소아성애자 연쇄살인범을 어떤 식으로 자극하는지 보여주는 중후반부는 마치 스릴러 영화의 교차편집을 보는 듯한 긴박감을 준다. 마침내 비와 안개와 죽음을 품은 황무지 엑스무어의 블랙랜드에서 소설은 폭발적인 대단원을 맞이한다. 이곳은 과연 스티븐과 에이버리 중 누구에게 희망의 땅이 되어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