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책 - 패멀라 폴 지음, 정혜윤 옮김/문학동네 |
「뉴욕 타임스」 작가 인터뷰!
재기 넘치는 작가들의 책과 문학에 대한 지적인 수다
이언 매큐언, 줌파 라히리, 알랭 드 보통, 맬컴 글래드웰, 재레드 다이아몬드, 조앤 K. 롤링, 마이클 코널리, 리처드 도킨스, 이창래, 셰릴 샌드버그, 댄 브라운……
독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이 작가들은 요즘 무슨 책을 읽을까? 그들의 인생을 바꾼 책은 무엇이고, 그들이 흠모하는 작가는 누구일까? 그들이 영감을 얻는 책은? 비밀스런 취향은? 별난 독서 습관은?
「뉴욕 타임스 북 리뷰」는 「뉴욕 타임스」가 매주 일요일 발행하는 서평지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널리 읽히는 서평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잡지는 2012년 4월부터 지금까지 약 4년 동안 「By the Book」이라는 코너를 통해 한 작가의 인터뷰를 빠짐없이 실어왔다. 『작가의 책』은 바로 이 「뉴욕 타임스 북 리뷰」에 실렸던 인터뷰 중, 요즘 가장 사랑받는 작가 55인의 인터뷰를 추려 묶은 책이다. 참여 작가의 대부분은 소설가지만, 과학자나 배우, 뮤지션 등 논픽션 작가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작가들에게는 공통된 질문이 주어진다.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무엇인가?” “과대평가되었다고 생각하는 책은?” “대통령에게 권하고픈 책은?” “끌리는 이야기 유형이 있다면?” “자기계발서도 읽는지?” “만나보고 싶은 작가는?” 등) 하지만, 대상에 따라 특정 취향을 묻는 개별적인 질문들도 나온다.
관계와 사랑에 대한 통찰로 유명한 알랭 드 보통에게는 지금까지 읽은 책 중 최고의 러브 스토리라 생각되는 것을 묻고, 『총, 균, 쇠』의 저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에게는 추천해줄 만한 지리학서가 있는지 묻는다. 『다빈치 코드』의 댄 브라운에게는 좋은 스릴러의 요건을 묻고,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에게는 어떤 책에 가장 영향을 받았으며, 예비 과학도에게 추천해줄 만한 과학책은 무엇인지 묻는다. 페이스북 운영책임자이자 여성을 위한 자기계발서 『린 인』의 저자 셰릴 샌드버그에게 기업 운영자에게 추천해줄 책을 묻고, 현 하버드 대학 총장 드루 길핀 파우스트에게는 하버드의 모든 신입생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책을 묻는다.
이 외에 ‘잭 리처 시리즈’를 만들어낸 유명한 스릴러 작가 리 차일드가 가장 좋아하는 스릴러 작가는 누구일까? 조앤 K. 롤링은 해리 포터 시리즈 중 무엇을 가장 아낄까?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저자이자 일본에 오래 살았던 데이비드 미첼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 작가는? 촘촘한 구성과 사실력 넘치는 묘사로 정평난 이언 매큐언은 과연 시를 읽을까? 줌파 라히리에게 이민자 소설이 의미하는 바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창래가 작가가 되게 만든 책은?
다채로운 질문에 작가들은 예상을 벗어나는 더 다채로운 대답으로 응수한다.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고 그간의 독서 편력을 읊는다. 작가로서의 삶과, 그들이 읽어온 책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작가들이 자신의 내밀한 열정을 진솔한 육성으로 들려주는 이 책은 책을 사랑하는 모든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충족시키는 동시에, 작가를 한층 더 이해하고 좋아하게 만들 것이다.
사랑해마지않은 ‘인생의 책’
법정 스릴러의 대가인 스콧 터로는 추천사를 통해, 작가의 창작 비법보다 그들이 읽는 책이 더 궁금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작가가 애착을 보이는 책들은 지면에 드러나지 않는 그의 생각이나 문학적 취향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창이다.”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의 단상』을 읽지 않았다면 자신의 첫 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쓸 수 없었을 것이라며 롤랑 바르트에게 경의를 표하고, 맬컴 글래드웰은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이 “세계에 대한 시각의 기본”을 마련해주었고 저술가로서의 자기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술회한다. 댄 브라운은 어린 시절 『시간의 주름』을 읽고 “이야기의 마술과 인쇄된 단어의 힘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회상하고, 제프리 유제니디스는 앨리스 먼로의 단편을 읽을 때마다 “인생을 다 살아버린 것 같은 느낌에 그냥 바닥에 드러누워 죽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오랫동안 종교 교리의 허구성을 비판해온 리처드 도킨스가 순수한 문학적 즐거움을 위해 성경을 즐겨 읽는다는 대목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작가의 길로 인도한 책
많은 작가들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 결국 책을 쓰게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데이비드 세다리스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을 읽으며 말문이 막혔던 기억이 동시대 작가들에 대한 관심의 문을 열어주었고 그를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만들었다고 한다. 게리 슈테인가르트는 다섯 살 때 『닐스의 이상한 모험』을 읽고 자기만의 소설을 써서 엄마에게 소련 치즈 100덩이를 인세로 받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앤 라모트는 샐린저의 『아홉 가지 이야기』를 읽고 어린 영혼이 완전히 바뀌는 경험을 했고, 이사벨 아옌데는 특이하게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읽고 “이 사람이 할 수 있는 거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모두가 좋아하는 작가, 일부만 좋아하는 작가
한 번이라도 만나보고픈 작가로 작가들은 너도나도 셰익스피어를 꼽았다. 이언 매큐언은 『햄릿』에서 “인간 묘사에 대한 일종의 도약이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인간의 내적 삶이 우리의 숙고 대상이 되었다”고 평한다. 무인도에 가져가고 싶은 책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작가도 셰익스피어다.
하지만 동일한 책이나 작가에 대해서 정반대의 반응들이 나오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흔히 가장 위대한 영미 소설 중 하나로 흔히 평가되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대해서 정작 여러 작가들은 의구심을 표한다. 과대평가된 책의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다. 리처드 포드는 『율리시스』를 “교수들을 위한 책”이라고 혹평하고,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몇 번이나 읽으려고 시도했지만 매번 열 페이지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또한 많은 작가들이 찬탄해마지않는 헤밍웨이에 대해서 존 어빙은 “그의 문장은 광고 문구로 써도 될 만큼 짧고 단순하다”며 그의 모든 책이 과대평가되었다고 열을 올린다.
포기한 책, 남몰래 즐기는 책
작가라고 유명 작품을 다 읽은 것은 아니다. 읽다가 포기한 책, 남몰래 즐기는 책을 고백하는 부분에서는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리처드 도킨스는 유명한 책을 가장 적게 읽은 사람이 이기는 게임을 한다면 자신이 승자라며 매번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겠다는 계획만 세우고 있다고 말한다. 데이비드 세다리스는 『모비 딕』을 읽으려 안간힘을 썼다고, 제임스 맥브라이드는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하나도 안 읽었다고, 리나 더넘은 『위대한 개츠비』를 읽다가 포기했다고 밝힌다. 맬컴 글래드웰은 조앤 K. 롤링의 책을 읽다가 덮었다며, 자신에게 문제가 있냐고 반문한다.
그들이 고상한 것만 읽는 것은 아니다. 리나 더넘은 영적 접근을 하는 자기계발서를 떳떳하지 못한 마음으로 즐겨 읽으며,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타블로이드 신문을 통해 유명 인사들의 아기들 이름까지 줄줄이 꿰고, 데이비드 세다리스는 남몰래 『해리 포터』 오디오북을 듣는다!
대통령에게 권하고픈 책
이 부분에선 작가들의 재치와 유머가 특히 돋보인다. 맬컴 글래드웰은 “한 남자가 기지와 주먹만 가지고 세상의 문제를 전부 해결하는 게 가능한 세계로 도피해보라”는 이유로 리 차일드의 책을, 이언 매큐언은 “공화당 경쟁자의 마음도 녹일 수 있도록” 사랑에 관한 시를, 존 그리셤은 “그도 재미와 여유를 찾을 권리가 있다”며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권한다. 가난과 부패, 권력 남용 문제, 동성애자의 인권 등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을 촉구하는 언급들에서도 작가들의 문제의식과 분노가 고스란히 표출된다.
악착같은 열정으로 읽다
독서에 대한 악착같은 열정이야말로 거의 모든 작가들의 공통점이라는 사실을 『작가의 책』은 거듭 확인시켜준다. 조이스 캐럴 오츠는 전화 수화기에서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안내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동안에조차 책을 집어든다. 댄 브라운은 맬컴 글래드웰의 책을 오디오북으로 들으며 조깅을 하다가, 뒷이야기가 궁금해 1.6킬로를 더 달린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예순한 살에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시작해서 이탈리아 문학을 읽는 즐거움에 빠져버렸고, 줌파 라히리 역시 이탈리아어에 푹 빠져, 몇 년간 이탈리아어로 된 책을 탐독중이다. 이언 매큐언은 “독서가 주는 최고의 즐거움은 자기 존재의 망각”이라고 선언한다.
그들의 창작론과 작품론
작가들이 독서를 통해 받은 지적인 충격과 영감은 결국 그들의 독특한 관심과 창작론의 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작가의 책』은 보여준다. 이창래는 “절망적일 정도로 소외되어 있지만 늘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고 싶은 갈망에 사로잡힌 인물”을 선호한다. 주노 디아스는 “고통을 사랑하거나 완벽이라는 유혹에 이끌리는 단편 작가야말로 최고의 작가이며 반대로 장편의 매력은 절대로 완벽한 작품을 쓸 수 없다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마이클 코널리는 “가장 빨리 쓴 책이 가장 좋은 책”이라며 글쓰기의 탄력성을 옹호하고, 댄 브라운은 좋은 스릴러의 요건으로 “이야기의 핵심을 자극하는 윤리적인 논쟁이나 도덕적 딜레마의 포함”을 거론한다.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파고드는 작가인 조이스 캐럴 오츠는 자신의 모든 작품에 “한 방울의 유머”를 몰래 심어놓으려고 노력한다며 창작 지론을 밝힌다.
오늘날 책을 읽는다는 것
한때 책장에 진열해놓은 책을 통해 자기 자신을 드러내던 시절이 있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작가의 책』은 잊혀버린 명저에 대해, 작가들이 현재 주목하고 있는 책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읽게 될 책에 대해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의 마음속 서재에는 어떤 책들이 꽂혀 있는가. 자, 이제 독자의 차례다.